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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처음을 함께한 인연

임상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지만

임상에만 있었을 때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별도 겪게 된다.

 

보통, 병동에서라면 본인이 그만두고 싶어서, 채 정이 들기도 전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특히 요즘에는)

다른 직종에서는 일도 잘하고 한창 정이 들고나서 계약기간이 끝나는 바람에 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서

더 마음이 허전해 질 때가 있다. 

 

특히.. 내가 만난 타직종 선생님들은 대부분 부서 setup 단계에서 만나 이곳이 첫 직장이다보니

처음을 함께하고, 그 처음을 보면서 나도 내 처음을 생각하게 되고,

나아가서는 내 자식의 처음을 생각하게 되는..

 

예전에 신규를 볼 때에는 내 일하기 급급하고, 트레이닝 시키기 급급했지만

어느정도 자리를 잡고 신규를 대하면서는 규빈이도 커서 신규 직원이 되겠지.. 하는 생각에

규빈이 선배들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의 최소한은 넘겨보려고 애를 쓰게 된다.

대부분은 짝사랑이 되겠지만, 자식 키우는 게 다 그렇지 않다던가..

 

앞으로의 세상은 내 연배의 세대들은 이제 사라지고,

요즘 입사하는 세대들이 만들어나가는 문화 속에 네가 입사해서 들어갈텐데..

규빈이보다 나이는 훨씬 많지만, 규빈이 동생이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그럼 네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이 아주 조금쯤은 나아지지 않을까..

 

가장 풋풋하고 실수 많고.. 서로의 바닥을 다 들여다보고 부대끼고 기대고..

마음을 많이 주고 보낼 때의 부작용은 마음이 더 아프다는 거..

그치만 그렇게 함께하다 보낸 사람들이 다 원하는 곳에 가서 잘 살고 있고,

아직은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사람들도 어디 내놔도 걱정스럽지 않은 사람들로 커줘서..

그 덕분에 되려 힘을 얻기도 한다.

 

친자식 키우면서도 그렇지만..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하루하루가 실수투성이이고 미안함이 넘치는데..

나도 처음 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이의 처음을 함께하는 시간은 또 얼마나 서투르고 서툴렀을까..

그런 투박한 시간 속에서 알아봐준 진심이기에 더 고마운 친구..

 

함께한 시간 감사했다며 꼭 한 번 밥을 사고 싶었다는.. 이번에 그만두는 병원 후배를 만나 이야기하면서..

그는 어느 새 훌쩍 자란 자식이 첫월급으로 빨간내복 선물해준 느낌..

첫 담임 맡았던 아이들이 졸업식날 불러주는 스승의 은혜 듣는 느낌이 이런 걸까..

마음으로 낳고 키운 자식 떠나보내면서, 되려 기대되고 설레는 마음..

 

나만 열심히 마음을 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의미있는,

직장생활 안에서 그렸던 마지막 버킷리스트가 채워졌으니 이제 다 이루었네~

 

1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후배이자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지금같은 성실함과 따뜻함, 어둡고 밝은 면을 조율할 수 있는 중심잡는 능력, 진실됨을 가지고 가면

새로운 인연들과 함께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알찬 경험과 추억을 써내려갈 수 있을거야..

때로 걷는 길이 힘에 부칠 땐 처음의 서투름을 함께 극복해낸 시간들을 기억해주길..

이대로 계속 수빈샘답게.. 더 멋지고 단단한 사람이 되어주길..

2020년 새로운 시작, 당신도 나도 다시 초심으로...

 

2020/01/15 - [여기 함께] - 한양대 라리에또(La lieto), 인연과 추억의 길목에 자리한 행복한 시간